경상남도 남해, 섬 아닌 섬에서 태어났다.
사교육이 당연한 대한민국에서 큰 압박 없이 나름 자유롭게 살았다.
19년 무언가를 하고 싶다거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모르는 채
입학원서만 넣으면 되는 대학에 들어가 한 학기를 마치고 군대로 도망갔다.
대한민국의 남쪽 끝에서 평생 산 내가
북쪽 끝 강원도 철원에서 2년을 보내며
자연이 얼마나 무섭고 아름다운지 알게 되었다.
군대 다녀오고 철드는 건 딱 일주일이라는 말이 있듯,
군대 다녀와서 고향으로 돌아오니 다시
나태해지고 풀어져 고향에 있는 작은 전문대학에 진학했다.

별 생각 없이 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유치원부터 함께 자란 친구의 어머니가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는 사건을 겪게 되었다.
지금도 딱 집어서 말할 순 없지만
그때부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찾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쓰지 않는 카메라가 있다기에 30만원에 구매해 무작정 사진을 찍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을 찍고 SNS에 업로드를 하자
사람들이 좋아해 주니 기분이 좋았다.
카메라를 든 나는 재미있는 놀이를 시작한 아이 같았다.
매일 학교를 갈 때도, 학교를 빼먹으면서도
사진만 찍었다. 밤을 새워 사진을 보정했다.
별을 찍고 싶어 어두운 곳을 찾아 공동묘지에 찾아가고,
남해에서 하동까지 걸어가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카메라를 든지 1년 쯤 되었을 때
국토대장정을 해보라는 친구의 말에
산악인 엄홍길 국토대장정을 신청했다.
그리고 서류에서 떨어졌다
 전문대학을 다니는 학생은 지원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담당자에게 전화해 나는 사진을 찍으니
국토대장정 기간 동안 사진이라도 찍게 해달라고 했다.
담당자는 사진학과가 아니라서 안 된다고 했다.
다시 한 번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었는지
사진을 보고 결정해 달라고 말한 뒤
지금 보면 보잘 것 없는 몇 장의 사진을 보냈다.
일주일 뒤 함께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15박 16일 동안 대한민국 최전방에서 배낭을 매고
동해에서 서해까지 약 350km의 DMZ를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내 인생에서 손꼽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 팀에 국토대장정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감독님과 피디님이 계셨는데
나에게 자신의 회사에 들어오지 않겠냐 제안하셨다.
그렇게 남해에만 평생 살아본 내가 서울로 가게 되었다.
“카메라맨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조형적 감각과 견고한 교양적 배경이며 촬영 기술은 후자적인 것이다.”
감독님은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법과 인문학을 중요하게 가르쳐 주셨다.
3년 정도 회사생활을 하다 다시 사진이 찍고 싶어 회사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곳은 포트폴리오 하나 없는 나에게 사진으로 일을 줄 생각이 없었다.
서울을 오래 버티지 못하고 고향 남해로 돌아와 작은 사진관을 창업했다.

하지만 얼마 안되어 큰 수술을 받게 되었다.
항상 오른쪽 어깨가 아팠고 사진 찍는 사람들은 다 가지는
직업병 정도라 생각했던 통증이
디스크 검사를 받던 중 국내에선 생소한
아놀드키아리 증후군이라는 희귀난치병이라고 했다.
지금이야 편하게 말하지만 오른팔이 아픈 건
이 때문이었고 점점 신체 오른쪽의 감각이 무뎌지고
웃거나 기침을 하면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사진관 문을 연지 6개월,
사진관 문을 닫고 다시 서울로 가서 수술을 받았다.
머리를 열어야하는 큰 수술이라 사진을 계속 찍을 수 있을지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으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다행히 수술이 잘되어 몸이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반년에 한 번 가던 병원도 이제 2년에 한번 간다.
큰 수술을 하고 돌아오니 살아있음에 감사했고,
사진을 계속 찍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예전에는 내가 느끼는 감정을 사진으로 기록했지만
수술 후 나는 사람들의 감정을 담아내고 싶었다.
사진으로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이 후  일 년에 약 600명씩 인구가 감소 중인 고향 남해에서
터전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기록하는 남해사람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진관을 찾아오기 힘든 어르신들과 장애인,
다문화가정이 살고 있는 마을로 찾아가 촬영 후
액자에 담아 선물해 드리고 있다.
촬영을 할 때 그들의 웃음 가득한 모습을 본다.
그들의 사진으로 전시를 하며 사라져가는 고향 남해를 알리고
나의 사진기로 남해 사람들의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이 작업은 내가 카메라를 놓게 되는 순간까지 가지고 갈 것이다.
연출된 인물사진 표정에는 긴장과 어색함이 보여 선호하지 않는다.
주어진 상황에서 순간을 포착하는 사진들을 좋아한다. 자연스러움을 추구한다.
특히 집회나 일상 속 사람들의 사진에 감정이 잘 드러나 큰 흥미를 느낀다.
서울에선 집회 현장을 찾아다녔고 남해에선 삶의 현장을 찾아 다니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의 눈빛을 담고 사람을, 현장을, 남해를 기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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